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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조선일보 캘리그래피 기사
권오성 10-12-16 09:15 11,049회 0건

타이틀 제작자 강병인씨, 9개월간 6명에 무료수업
"장애인들은 순수하고 표현하는 능력도 탁월… 내년 사회적기업 세워 자립할 수 있게 도울 것"

왼발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에 붓을 끼운 청년이 능숙하게 '메리 크리스마스'란 글자를 한지에 적어 내린다. 붓끝에 힘을 주고 일부러 글자 획마다 삐뚤빼뚤 곡선을 그리니 신나고 재미있는 이미지가 풍기는 '메리 크리스마스' 글자가 완성된다.

"크리스마스 하면 산타할아버지, 캐럴, 루돌프가 생각나지? 글씨만 봐도 즐거운 이미지가 떠올라야 돼."

지난 9일 마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캘리그래퍼 강병인(사진 가운데 손에 붓을 든 사람)씨가 제자들에게‘메리 크리스마스’를 써보도록 하며 마지막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지난 9일 오후 마포구 성산동 마포장애인종합복지관. 소주 '참이슬', 드라마 '엄마가 뿔 났다' 타이틀 등의 손 글씨를 쓴 캘리그래퍼(calligrapher·손글씨 예술가) 강병인(48)씨가 글씨체의 묘미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뇌병변 1급으로 구족(口足)글씨를 쓰는 오성학(25)씨 등 6명의 '특별한 제자'가 예술가로 다시 태어나는 현장이다.

◆장애인 6명, 수준급 솜씨로

국내 대표적인 캘리그래퍼인 강씨는 지난 3월부터 마포구 관내 6명의 장애인 제자를 상대로 '캘리그래피학교'를 열고 지난 9개월간 수업을 이어왔다. 강씨는 "지난 2008년 드라마 '대왕 세종' 타이틀 손글씨를 쓰며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나눔 정신을 나 스스로도 실천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지난 2008년 말 마포구청에 자원봉사의 뜻을 전했고, 1년 정도 준비기간을 거쳐 올 초 장애인을 위한 캘리그래피학교의 문을 열었다. 장애인들도 솜씨만 있으면 캘리그래퍼를 평생 직업으로 삼아도 손색없을 것이란 생각도 그가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봉사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날은 강씨가 6명의 제자들에게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강의실 책상에 한지를 쭉 펴더니 '메리 크리스마스' '애인' 등과 같은 글자를 써내려갔다.

"'애인'이라는 글자를 쓸 때는 정말 여자친구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쓰면 돼. 애인의 '인'자 'ㄴ' 받침을 'U'자 모양으로 둥글게 써주면 애인이 환하게 웃는 듯한 표현을 할 수 있지."

그가 써내려가는 글씨가 '마술사'가 생명이라도 불어넣는 듯 새로운 이미지로 태어나자 제자들은 "와~"하고 감탄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이어 제자들이 제각각 자신만의 감성을 살려 글을 쓰기 시작하자 강씨는 한명씩 돌아가며 한자한자 개인 과외를 하듯 글씨체를 봐줬다.

◆"글꼴에 자신만의 표정 입혀요"

강씨는 "캘리그래피 디자인은 글꼴에 새로운 표정을 입히는 것"이라며, "제품이나 영화 타이틀 등으로 쓰여지는 글씨 디자인도 있고, 한글의 멋과 아름다움 자체를 표현하는 순수 디자인도 있지만, 모두 디자인과 전통서예를 바탕으로 새로운 글꼴을 만드는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처음에 장애인을 대상으로 강의를 맡으면서 고민도 많았다고 했다. 디자인을 오랫동안 공부해온 그의 일반 제자들과는 달리 이들은 디자인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저마다 장애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제자들이 일반인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순수한 이미지를 글씨에 표현해 내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들에게는 일반인들이 갖지 못한 '순수함'이 있고, 이를 표현하는 능력도 탁월했어요."

강씨의 열정적인 가르침에 제자들도 그의 팬이 되기 시작했다. 장애인 역도선수이기도 한 서경원(43)씨는 휠체어에 앉아 '메리 크리스마스' 글씨를 써보면서 "역도와 손글씨 디자인이 마음을 집중해 정신수양 하는데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며 "선생님 덕분에 손글씨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다"고 했다.

양말을 벗고 발로 글씨를 쓰던 오성학씨는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수업이 끝나도 종종 전화를 한다"며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글자를 더욱 멋지게 잘 쓰면 여자친구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고 했다. 오른손이 불편한 박동순(36)씨도 "왼손으로 글씨를 잘 쓰고 싶어서 강의를 받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교수님 덕분에 자신감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날 강의는 캘리그래피학교의 공식적인 마지막 수업이었지만 그는 앞으로도 제자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면 언제든지 개별적인 추가 수업을 해줄 생각이다.

"가끔 밤에 제자들이 선생님이 보고 싶다며 전화를 해오면 가슴 속에서 울컥하는 감동을 받곤 합니다. 한 식구처럼 느껴져요."

그는 내년 후반기 디자인사 20개 정도와 자매결연을 맺어 캘리그래피 사회적기업을 설립해 제자들이 캘리그래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마지막 수업을 했습니다. 제가 제자를 가르친 게 아니라, 지난 9개월간 제가 6명의 스승을 둔 것 같습니다. 제 수업을 잘 들어준 제자들이 참 고맙습니다."

마포구청에서 주관하고 캘리그라퍼 강병인씨가 자원봉사로 장애인들에게 캘리그라피를 가르치는 마포캘리그라피학교가 9일 오후 마지막 수업을 하고있다./이진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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