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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직후 태화복지관 산증인 페기 빌링스 전 태화사회복지관장 인터뷰
관리자 11-04-06 10:11 4,906회 1건

창립 90년 행사 참석차 방한…"한국 발전 도와 자부심"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지난 60년 동안 한국은 엄청난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한국인의 활동과 성과를 볼 때 정말 자랑스럽네요."

최근 방한한 페기 빌링스(82ㆍ여) 전 태화사회복지관장은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때만 해도 서울 거리에는 고아와 노숙인이 넘쳐났다. 전쟁 이후 생겨난 다양한 계층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줘야 했다"며 6.25 전쟁 직후 복지관의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했다.

1921년 선교사 마의수(매미 마이어스)가 '태화여자관'으로 시작한 태화복지재단은 한국전쟁과 민주화를 거치면서 90년간 전국 각지에 복지관을 비롯한 42개 시설을 설립해 소외계층에 돌봄의 손길을 내밀어 온 단체다.

1954년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태화복지관을 맡았던 빌링스 전 관장은 빈민층을 위해 복지관에서 야학을 운영한 가운데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일터로 나서야 했던 여성들을 대상으로 직업상담소도 열었다.

전쟁으로 불구가 된 이들과 병원을 연계하고 일자리를 찾아주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전쟁 막바지인 1953년 1월 한국에 왔습니다. 다행히 태화복지관은 폭격을 피했지만 복구가 급했고, 미군 점령하에 있던 복지관도 되찾아와야 했죠. 프로그램도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는 작업이었죠."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들을 지지한다"는 그는 "우리가 지금과 같은 한국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것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복지의 기반을 다지고 사회 발전에 일부 도움을 줬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변영숙'이라는 한국 이름까지 받은 빌링스 전 관장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등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관련 현안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1975년부터 1990년까지 15년간 북미한국인권문제연합회장을 자임해 미국과 캐나다인들에게 한국의 상황을 꾸준히 알리기도 했다.

빌링스 전 관장은 종교인의 사회 참여에 대해 "모든 종교인은 정부가 옳지 못한 결정을 내리면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분명한 견해를 밝혔다.

미국 흑인운동과 여성운동, 베트남전 반대운동에 참여했다는 그는 "나도 미국인으로서 직접 워싱턴을 찾아가 저항 의사를 표시한 적이 있다"면서 "그래야만 정부가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다른 의견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덧붙였다.

미국 스카릿대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고 한국에 들어온 빌링스 전 관장은 1954~1963년 6대 관장을 맡았다. 그는 4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리는 재단 창립 90주년 행사에 참석하고 20일 출국할 예정이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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